“할머니의 주름살”

작성일 : 2024-01-31 20:02 수정일 : 2024-02-01 21:00 작성자 : 김응범 기자 (amen88@hanmail.net)

이갑선 장로(도마침례교회)

 

할머니는 스무 살 되던 해에 시집을 왔습니다. 시집온지 벌써 60년이 됐습니다. 곱다거나 예쁘다는 소리 할머니는 듣지도 못하고 세상을 살다가 이제 늙어버린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시집오던 첫해부터 밭농사일, 길삼 일을 하느라고 허리가 휠 정도였습니다. 새벽닭이 울어 일어나면 밤 열시가 돼서야 몸을 추수 릴 수가 있었습니다 시집와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으니 세상 구경을 해보지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 셋 낳아 둘은 날리고 하나를 키웠습니다. 영감쟁이는 술은 고래에 도박까지 살림에 보탬이 되지 못합니다. 오입은 취민가? 습관인가? 본처는 본채 안방에, 소실은 별채에 두고, 본인은 사랑방에서 생활했죠. 할머니는 그것이 팔자라고 체념하고 살았습니다. 젊어서 경찰서에 영감이 싸움 사건에 말려들어 화해할 때 보증인으로 경찰서에 갔었고, 나이 들어 아이가 학교에서 사고를 쳐서 선생님께 불려가서 주의 듣고 앞으로 책임지겠다고 각서에 지장도 찍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영감, 아들 명을 재촉해 가버렸고 오늘 경찰서 보호실에 열일곱 손자놈이 사고를 쳐서 보호자로 불려 나왔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 앞에 대형 거울 속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노인네가 있었습니다. 퍽도 낮이 익는 데 얼마 후 할머니는 자신이란 걸 알았습니다. 아! 저렇게 늙었나? 남편 뒷바라지 자식 뒤처리 이제 손자놈 문제까지 먹고살고 살기 바빠, 거울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 내가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게 되었구나. 할머니는 지난 바쁜 세월이 아쉽지도 밉지도 안 했습니다.

 

영감 죽을 때도 아들 죽을 때도 할머니는 눈물이 없었습니다. 바쁜 세월 속에 할머니가 묻혀버렸기 때문입니다. 보호실에서 경찰관이 손자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손자의 손을 꼭 잡아줬습니다. 이제는 잘하고 살아야 한다. 경찰관 아저씨도 말했습니다. 사고 치지 말아라 할머니 주름살을 봐라! 얼마나 고생하셨는가를 손자는 고개를 묻었습니다. 할머니 잘못했어요! 나이 들면 주름살만 인생 계급장처럼 나무 나이테처럼 흔적으로 남습니다.

 

사람이 한평생 산다는 게 그랬습니다. 젊을 때는 모두 예쁘게 아름다웠을 것인데-- 할머니의 한평생은 주름살이 되어 얼굴에 내려앉았습니다. 손자를 앞세운 할머니는 꼬부랑 할머니 걸음으로-- 배는 안 고프냐? 그래도 손자가 예쁜 모양입니다. '박태훈의 해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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