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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물러터진 법이 피해자를 죽인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작성일 : 2026.06.23 06:00 수정일 : 2026.06.23 06:57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최근 충북 음성군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모자(母子)의 비극적인 죽음은 우리 사회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담함을 안겼다. 수천만 원대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본 뒤 처지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현장에 남겨진 유서에는 사기 피해로 인한 극심한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5,000만 원이라는 돈은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액수일지 모르나, 이들 모자에게는 삶의 전부이자 생존의 기반이었을 것이다.

 

보이스피싱은 단순히 지갑을 털어가는 경제 범죄가 아니다. 피해자의 영혼을 파괴하고 한 가정의 삶을 통째로 송두리째 앗아가는 '간접 살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잔인한 범죄를 대하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잣대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물러터졌다.

 

보이스피싱 사기꾼들에 대한 현행법의 처벌 수위가 범죄의 악랄함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사회적 분노는 결코 근거 없는 감정적 배설이 아니다. 현장에서는 대포통장을 양도하거나 현금을 수거하는 하책(下策)들은 물론, 조직의 핵심 간부들조차 법정에서 온갖 감형 혜택을 누리며 미소를 짓는다.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사법부의 해묵은 관행인 '양형 기준'에 있다. 초범이라는 이유로 봐주고, 형식적인 반성문을 제출했다는 이유로 형을 깎아준다.

 

여기에 거대 로펌이나 유능한 변호사의 조력까지 더해지면 구속 직전의 중범죄자조차 집행유예로 유유히 걸어 나가는 유전무죄(有錢無罪)의 풍경이 펼쳐진다. 사기 친 돈으로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감형을 받고, 법망을 비웃으며 또다시 범죄를 모의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온정주의적 판결은 악랄한 보이스피싱 조직들에게 일종의 '기회비용'으로 인식될 뿐이다. "걸려도 몇 년 살고 나오면 그만", "초범이면 집행유예"라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범죄가 근절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

 

법이 범죄자에게 관용을 베푸는 사이, 피해자들은 법으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홀로 고통을 감내하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다. 과연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지금이라도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대책과 사법적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꿔야 한다.

 

첫째,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무조건적인 실형 선고와 '하한선' 강화를 입법화해야 한다. 전형적인 감형 사유인 '초범', '단순 가담', '반성' 등의 기계적 적용을 배제하고, 범죄로 발생한 피해 액수가 아닌 '한 가정을 파탄 낸 죄질'을 기준으로 중형을 선고해야 한다.

 

둘째, 범죄수익에 대한 철저한 환수 조치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사기로 얻은 이익보다 몇 배에 달하는 경제적 파멸이 뒤따른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범죄의 유인 자체를 차단할 수 있다. 변호사 비용 역시 범죄 수익에서 유래했다면 몰수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셋째, 해외에 거점을 둔 총책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국제 공조 수사 체계를 더욱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 인출책과 수거책만 잡는 꼬리 자르기식 수사로는 백약이 무효하다. 언제까지 무고한 시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끊는 비극을 방관할 것인가.

 

물러터진 법과 미온적인 처벌은 결과적으로 범죄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피해자를 죽음으로 떠밀어 넣는 공범이나 다름없다. 사법부는 이제라도 엄중한 사법 정의가 무엇인지 판결로 증명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책 마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다음 비극의 책임은 온전히 국가와 사법부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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