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과 경멸의 교차로에서
작성일 : 2026.07.26 07:43 수정일 : 2026.07.27 07:04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최근 세간의 시선을 집합한 소식이 전해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 분할금으로 현금 9,44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파기환송심 판결이었다.
역대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와 함께 천문학적인 액수가 언론을 도배하자, 하루하루 팍팍한 삶을 견뎌내는 서민들의 마음은 더욱 씁쓸해진다.
9,440억 원은커녕, 요즘 만 원을 훌쩍 넘긴 냉면 한 그릇값 9,400원조차 아까워 선뜻 식당 문을 열지 못하는 대다수 범부(凡夫)들에게 이러한 소식은 상대적 박탈감과 짜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 천문학적인 액수의 행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그 바닥에 깔린 인간관계의 근본적인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재벌가이든, 하루벌이로 살아가는 평범한 서민이든 관계가 무너지는 궤적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김영희 작가의 신간 《이래도 웬수 저래두 웬수》에는 가슴을 치는 경구(警句)가 나온다.
통계청 자료를 인용하며 30년 이상 살아온 부부의 황혼이혼이 전체의 큰 비중을 차지함을 지적하고, 그 결심의 결정적 계기가 다름 아닌 ‘배우자의 무관심과 인격 무시’라고 짚어낸다.
폭력이나 외도 같은 대형 사건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바로 매일 눈빛과 말투에 묻어나는 작은 무시와 깔봄, 즉 ‘경멸(contempt)’이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존 가트맨 박사 역시 관계를 사멸시키는 가장 독한 독소로 ‘경멸’을 꼽지 않았던가.

경멸이 심각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서운함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나보다 낮게 보고 업신여기는 순간, 대화의 문은 닫히고 인내의 제방에는 균열이 간다.
한 번 쌓이기 시작한 경멸의 먼지는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르고, 마침내 감정의 임계점을 넘어서면 극단적인 파국이나 이혼이라는 절벽으로 등밀어 버린다. 자칫 폭력이나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지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이혼과 경멸의 교차로는 언제나 이렇듯 위태롭고 서늘하다. 9,440억 원의 재산 분할 판결을 보며 씁쓸해하면서도, 우리가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남의 집 재산 규모가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이에게 무심코 던지는 '경멸의 시선'이다.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라고 해서 상대의 참음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도 상대가 알아주고 존중할 때 미덕이 되는 법이다.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참음은 결국 짐이 되고, 한쪽의 눈빛에서 온기가 사라질 때 가정이라는 배는 노를 잃고 방황하게 된다.
결국 황혼이혼이든 조기이혼이든, 파국의 에스컬레이터를 가동하는 핵심 동력은 거창한 불화가 아닌 매일의 작은 '경멸'이다.
1만 원짜리 냉면 한 그릇에 주춤하는 서민의 삶일지라도, 서로를 따뜻하게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감사함을 잃지 않는다면 그 온기야말로 천문학적인 재산보다 더 값진 인생의 자산이 아닐까.
늦기 전에 오늘 내 옆의 사람(배우자)을 향한 내 눈빛과 말투에 경멸의 가시가 돋혀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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