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4-02-11 07:56 수정일 : 2024-02-13 22:36 작성자 : 김상호 (sangho5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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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김상호 |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 최초로 의병(義兵)을 일으킨 사람이 조선시대 위인 곽재우 장군이다. 일본군의 침입으로 조선왕이 의주로 피난을 하자 그는 경상남도 의령에서 의병(義兵)을 일으켜 일본군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군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켰던 백성들의 활약은 매우 컸으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나선 조선시대 위인 곽재우(郭再祐, 1552년 ~ 1617년)는 조선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으로 임진왜란당시 진주성전투, 화왕산성전투에 크게 활약한 의병장이다.일본군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
곽재우는 10대 중반에 의령과 가까운 경남 산음에 정착한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전기에 의하면 곽재우는 19세 때부터 무업(武業)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하며, 《장감박의(將鑑博議)》를 읽어 문리를 터득했다고 한다. 사실 곽재우가 유독 특별했던 것은 아니라 당대 지방 사족 자제들의 시류에 따른 것이었다. 대과에 급제해 중앙에 나아가는 방법이 가장 좋지만, 지방 출신이 한양에 터 잡은 쟁쟁한 집안들과 경쟁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만큼, 기준선이 좀 낮은 무과를 노리거나 군역을 통해 정병으로 복무하다 군관이 되는 것도 출세의 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장인 김행이 무관 출신이어서 그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나, 의령 사람 곽재우다!
이 사람, 벼슬이라고는 닭벼슬도 하지 못한 이 곳 의령땅 곽재우요. 비록 나라의 녹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우리의 조상과 우리의 탯줄이 묻힌 이 산천이 왜적들에게 유린되는 참상을 차마 눈을 뜨고 보지를 못하여 붓 대신 칼을 들고 일어났소이다.
의기 있는 조선의 장정들은 들으시오. 왕실과 조정이 비록 왜적들을 피해 북으로 몽진하였다고는 하나 우리마저 손을 놓고 산 속으로 숨어든다면 우리들의 고향산천은 왜적들의 땅이 되고 말 것이며 우리들의 자식 또한 잔학무도한 왜놈들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오. 그토록 참혹한 땅에 사느니 이 곽재우와 함께! 우리 땅을 능욕질을 한 왜놈들과 원 없이 싸워보는 것이 어떻겠소!
적병이 이미 박두했으니 우리의 부모, 처자는 장차 적병의 포로가 될 것이다. 우리 동네에 나이 젊어 싸울 수 있는 자가 수백 명은 될 것이니 만약 마음을 같이 해 정암나루(鼎岩津)에 의거해 지킨다면 우리 고장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것인가.
임진왜란 의병장으로 곽재우는 심대승, 권란 등 평소 알고 지내던 장정 10여 명과 그들이 거느린 노비들을 합쳐 50여 명 남짓한 조촐한 병력으로 의병장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의병 창설을 위해 자기 처자의 의복까지 모두 내놓은 곽재우였지만 병력을 유지하고 무장시키기에는 모자랐다. 처자의 의복까지 걷어다 자신을 따라준 병사들의 가족에게 나눠주어서 곽재우의 처자들은 매부 허언심의 집에 의탁해야 했다. 추수철이 아니니 논에서 곡식을 베어올 수도 없고 의령 관아의 창고는 난리통에 불에 타버려서 군량을 충당할 수 없었다. 결국 곽재우는 인접한 초계와 신반현 관아의 창고를 뒤져 무기와 군량을 확보하고 강에 버려진 세곡선의 세곡을 가져다 군량에 보태었다.
군인으로서 전공으로 보나 지휘력으로 보나 가장 거품이 없는 의병장이라 할 수 있는 곽재우 의병장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장수들은 적의 머리수를 확인해서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곤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 위인 곽재우 장군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적의 머리를 베면 모두 강물에 던져버렸다. 그가 전쟁에 참가한 것이 자신의 출세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정에서는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여 벼슬을 내렸으나 조정에서 내리는 높은 관직보다는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일본군들을 물리치고 전쟁을 극복할 것인가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전쟁 이후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정치적 분쟁에도 관여하지 않은 채 그는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조용히 여생을 마감했다.
정치인, 출세 지향적인 군상들은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곽재우 장군의 가장 본받을 부분은 스스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는 점이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호국을 실천한 셈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시대를 불문하고 계승돼야 한다. 제2, 제3의 홍의장군이 나올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의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화로 떠들썩 했었다.
이순신 장군,홍의장군 곽재우같은 분들의 공원이 만들어 지고 위인의 정신을 계승 하고 하는 것이 지금 이시대를 사는 대한인의 도리요,의무일 것이다.